익산 쌍릉 무덤주인 논란 '무왕'으로 일단락

박종식 2018. 7. 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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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의 시사문화재][노형석의 시사문화재]
역사 이슈의 화수분이 된 쌍릉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쌍릉 인골 분석결과 발표
"7세기 사망한 큰 키의 50대이상 남성"
'무덤주인은 백제 무왕' 사실상 결론 지어
2년전 전주박물관 '젊은 여성' 추정 뒤집어
향후 발굴할 소왕릉 선화공주 실체 나올까
익산 쌍릉 석실에서 나온 인골이 18일 오전 서울 경복궁 고궁박물관에서 취재진에게 공개됐다. 맨 뒷쪽 나무상자는 1917년 처음 무덤을 발굴한 야쓰이가 인골을 넣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쌍릉은 신라 선화공주와의 로맨스가 담긴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의 무덤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백제 무왕이 확실합니다. 무덤 주인을 둘러싼 논란은 사실상 일단락됐다고 보면 됩니다.”

18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언론설명회장에서 만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사람들의 말이다. 그들은 설명회장에 공개된 뼈들을 지켜보며 자신만만해 했다. 설명회는 지난 4월 전북 익산 쌍릉의 대왕릉 발굴 과정에서 나온 인골에 대해 과학적 분석결과를 밝히는 자리였다. 연구소의 발표내용을 요약하면, 인골의 주인공은 무왕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과학적 분석과 추론을 통해 인골의 면면을 살펴본 결과 7세기 초중반 숨진 60~70대 이상 노년층 남성의 것으로 드러났고, 이런 정황에 부합하는 당대 백제 왕은 600년 즉위해 641년 숨진 무왕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익산시 석왕동 숲 속에 자리한 쌍릉은 <서동요> 설화의 주역인 무왕의 무덤이란 설이 전해져오는 대왕릉과 <서동요>에서 무왕의 연인으로 나오는 신라 선화공주의 것이란 설이 있는 소왕릉(작은 무덤)으로 나뉘어 있다. 대왕릉은 1917년 일본 학자 야쓰이 세이이쓰가 처음 조사해 치아와 목관의 관재, 토기 등을 처음 발굴했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첫 발굴 100년만인 지난해부터 재발굴을 벌여 무덤 안에서 정체불명의 인골들을 채운 나무상자를 발견해 지난 4월 공개했다. 그 뒤 인골의 정체가 무왕인지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는데, 연구소가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만한 결과를 이날 공개한 것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무덤 속에 남은 유골 조각 102개체를 대상으로,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물리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인골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 수종 등을 심층조사했다고 한다.

100년만에 재조사한 익산 쌍릉 석실 내부 모습과 그 안에서 나무상자에 든채 발견된 인골들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우선 성별은 확실한 남성으로 판명됐다. 팔꿈치 뼈의 각도(위 팔뼈 안쪽 위 관절융기 돌출양상), 발목뼈의 일부인 목말뼈의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의 너비 등을 볼 때 남성의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정강이뼈 시료를 미국 베타연구소에 의뢰해 가속 질량분석기(AMS)로 방사성탄소연대를 재보았더니 보정연대가 620~659년으로 나왔다. 즉 인골의 주인은 7세기 초중반의 어느 시점에 세상을 떠난 것을 알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연구소는 600년 즉위해 641년 사망한 무왕의 재임 기록으로 미뤄 10대 또는 20대에 즉위한 무왕의 사망 연령은 쌍릉의 인골 추정 연령과 비슷해진다고 짚었다.

나이를 최소 50대 이상 60~70대 노년층으로 보는 건 뼈에서 노화기의 여러 징후가 보이는 게 근거가 됐다. 목의 울대뼈가 있는 갑상연골에 골화(연골, 인대 등이 노화로 굳어 뼈처럼 변하는 현상)가 진행되었고, 골반뼈 결합면의 표면이 거칠고, 작은 구멍이 많이 관찰되며, 불규칙한 결절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또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기준삼아 인골의 키가 161~170.1㎝로 제법 큰 편이라고 추정했다.

이번 발표는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이 일제강점기 대왕릉 무덤서 나온 치아 2개와 신라토기 등을 분석해 20~40대 외지에서 온 젊은 여성일 것이라고 추정한 설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다. 이후 치아 2개와 백제권에서도 발견되는 토기 한 점을 갖고 무리한 결론을 냈다는 비판이 학계에서 계속 나왔는데, 이번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과학적 분석으로 확실한 반박을 한 셈이 됐다. 하지만 이런 논쟁을 거쳐 그동안 무관심 속에 묻혀있던 쌍릉과 무왕, <서동요>를 둘러싼 역사적 수수께끼가 재조명됐고, 무왕의 역사적 중요성을 깨닫게 된 익산시 쪽이 적극적으로 쌍릉 발굴까지 추진하면서 백제사의 지평이 더욱 넓어지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들이 많다.

이우영 가톨릭의과대 교수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익산 쌍릉의 인골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고려사절요>에 14세기의 도굴사건까지 기록될만큼 쌍릉은 후대인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무덤주인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도 고조선에서 내려온 마한의 준왕이냐, 백제 무왕이냐에 대해 당대 지식인들이 실랑이를 벌였던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첫 근대식 발굴을 통해 쌍릉 대왕릉의 무덤 속 내부유물들을 수습하고 백제왕릉급임을 확언한 야쓰이의 조사로 마한왕 설은 가라앉았다. 쟁점은 무왕이 정말 무덤주인인지로 좁혀졌다. 그렇게 100년이 지나,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의 치아 분석 결과가 느닷없이 발표되면서 무덤 주인 논쟁의 대상에 선화공주설이 끼어들었다. 논란이 새삼 가열됐고, 결국 쌍릉의 대왕릉에서 예상밖 출토품으로 확인된 인골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끝에 무왕의 것임을 결론짓는 연구소의 발표가 나오면서 논란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셈이 됐다. 달리 보면, 무덤주인이 선화공주일 가능성을 내비친 2년전 국립전주박물관의 파격적인 학설 발표가 쌍릉에 대한 관심을 다시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익산시와 문화재청의 쌍릉 재발굴을 촉발하고, 인골 발견과 과학적 분석, 무왕이란 결론으로 이어지는 끌차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공중에서 내려다 본 익산 쌍릉 대왕릉의 모습.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무덤 주인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쌍릉은 두기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학계의 관심은 내년에 발굴을 추진할 대왕릉 부근의 소왕릉(작은 무덤)으로 쏠리고 있다. 소왕릉은 대왕릉에서 180m정도 떨어져있는데, 무덤 주인이 선화공주인지, 2009년 익산 미륵사 서탑 기단부 사리함에서 나온 서탑 봉영기에 발원자이자 무왕의 왕후로 언급된 사택적덕의 딸인지를 놓고 벌써부터 이런 저런 억측들이 나오는 중이다. 쌍릉은 한국 ‘문화재 동네’에서 두고두고 역사에 얽힌 새 이슈들을 쏟아내는 화수분 같은 유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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